침이 마르면? 건강도 마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에서 나오는 시구다. 연탄재 못지 않게 침도 '너저분하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되기 일쑤다. 침 입장에선 할 말이 참 많다. “침 함부로 뱉지 마라. 너는 나보다 입안과 치아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느냐”고 일갈할지 모른다. 침은 단지 입안의 물이 아니다. 침이 마르면 건강도 마른다.
◆건강한 침의 조건=건강한 성인의 입안에선 하루에 0.5~ 1.5L의 침이 분비된다. 음식을 섭취할 때 침 분비 속도는 수면 시의 약 4배다. 안정된 상태에선 맑은 액체지만 음식을 먹거나 흥분하면 점도가 약간 올라간다. 침이 물보다 끈적거리는 것은 수분(98%) 외에 소량의 탄수화물·단백질·미네랄 등이 들어 있어서다.
우선 침은 소화를 돕는다. 입안에 침이 많을수록 음식이 잘 소화된다. 침안에 아밀라제(탄수화물 분해)·리파제(지방 분해) 등 각종 소화효소가 있다. 침은 입안에서 윤활유 역할도 한다. 음식이 식도로 잘 넘어가도록 돕는다. 침은 또 치아의 '방탄조끼'다. 한양대병원 치과 박창주 교수는 “침에 든 과산화수소·라이소자임·면역 단백질 등은 입안에 들어온 세균을 죽인다”며 “입안에 침이 부족하면 충치·잇몸병에 걸리기 쉽다”고 조언했다.
상처 났을 때 침을 바르는 행위는 삼가는 게 좋다. 침에 섞인 각종 세균에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침은 지혈·통증 해소에 유익하다. 출혈 부위에 침을 바르면 피가 빨리 멎는다. 역시 감염 위험이 있으므로 바르지는 말자. 침에서 '오피오핀'이란 통증 억제 물질이 발견됐다.
◆입안이 마르면 우울증 찾아온다=평상시엔 침이 분당 0.3mL의 속도로 나온다. 음식을 먹을 때는 더 빨라진다(0.4mL). 안정된 상태에서 침이 분당 0.1mL 이하로 나오면 구강건조증이다. 간단한 자가진단법도 있다. 편안한 상태에서 입안에 고인 침을 10분간 찻숟갈에 뱉어도 다 채워지지 않으면 침 분비량이 확실히 적은 것이다.
노인에게 흔한 증상이지만 노화현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흔한 원인은 일부 고혈압약·우울증치료제·진정제·항히스타민제·식욕억제제 복용 뒤 부작용이다. 침 분비를 억제하는 약은 400~600종에 달한다. 불안·우울감·스트레스 등도 침이 덜 나오게 하는 요인이다.
침이 부족하면 입안의 모든 기능이 고장나기 쉬워진다. 강에 수량이 부족하면 오염이 심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칫솔질을 열심히 해도 충치·잇몸병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을지대병원 치과 김훈 교수는 “침이 적으면 입냄새가 심해지고 입안이 끈적끈적해져 말하기도 힘들어진다”며 “대인관계 기피·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구강건조증 대처법=침이 적다고 느끼면 건조하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게 상책. 대신 물·우유 등 음료를 자주 마신다.
고려대 안산병원 치과 류재준 교수는 “설탕 대신 자일리톨·솔비톨이 든 무설탕 껌을 씹는 행위 자체가 침 분비를 늘린다”며 “치태(플라크)의 산도가 개선돼 충치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신맛이 나는 무설탕 캔디·귤·레몬·비타민 C 등을 섭취해 침샘을 자극하는 것도 방법이다. 뇌가 신맛을 감지하면 침 분비를 명령한다. 반면 이뇨 효과가 있는 커피·녹차·탄산음료 등 카페인 음료는 덜 마시는 게 좋다. 입안이 심하게 건조할 때는 칫솔 대신 면봉에 치약을 묻혀 닦는다. 칫솔이 건조한 점막에 닿으면 상처·염증이 생길 수 있다. 인공타액을 이용해도 효과적이다.
◆침이 너무 많아도 탈=침이 항상 이로운 것은 아니다. 부모의 침 속에 든 충치균이 침을 통해 아기에게 전해질 수 있다.
핀란드 투르크대학 에바 소더링 교수는 “충치는 모자 감염이 가능한 병”이며 “아기가 19~33개월 새 충치에 감염되지 않으면 평생 건강한 치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막힌 고무 젖꼭지를 엄마가 빨아서 뚫어주거나 아기의 이유식 맛보기, 같은 물컵 사용, 입맞춤할 때 충치균이 아기에게 전염될 수 있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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