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고혈압` 여름에 더 조심
사람의 사망 원인을 보면 대개 3명 중 1명은 고혈압과 관련된 뇌졸중(중풍), 심장질환 등과 같은 합병증으로 죽는다.
암질환 사망자의 비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고혈압은 혈관이 터져 목숨을 잃기 전까지 위험을 별로 체감하지 못해 '소리없는 저승사자' 또는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린다.
고혈압은 일단 진행되기 시작하면 아무런 증상을 느끼지 못한 채 심장혈관 장애, 뇌혈관 장애, 신장혈관 장애로 이어진다.
혈관질환 사망은 주로 겨울에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름에도 자주 발생한다.
강석민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무더운 여름철 땀을 배출하기 위해 피부혈관이 넓어지게 되고 이는 혈압을 떨어뜨린다"며 "이때 반사작용으로 넓어진 혈관에 피가 몰리고 심장은 이에 더 많은 혈액을 보내고 심장박동수를 더욱 빠르게 해 혈압과 관련된 뇌졸중이나 관상동맥질환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더위에 약하고 건강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은 특히 더 위험하다.
또 폭염에 노출돼 있다가 실내공기가 차가운 곳으로 갑자기 들어가면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이 발병할 수도 있다.
성지동 삼성서울병원 내과 교수는 "에어컨과 같은 찬 공기에 노출되면 말초혈관이 수축돼 심장 부담이 늘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혈압이 급상승하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온이 32도 이상에서 뇌졸중은 66%, 관상동맥질환은 20%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 혈압 120~80㎜Hg가 정상…맥압이 더 중요
= 혈압은 혈액이 혈관 속을 흐르고 있을 때 혈관벽에 미치는 압력을 말하며 보통 120~80㎜Hg가 정상이다.
일반인의 정상적인 수축기 혈압은 120㎜Hg, 확장기 혈압은 80㎜Hg다. 맥압은 최고혈압과 최저혈압의 차이를 말하며 고혈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맥압은 혈관의 탄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건강하고 탄력 있는 혈관은 자유로운 팽창과 수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맥압이 높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많거나 동맥경화증이 있는 사람은 혈관의 벽에 탄력성이 떨어져 정상인에 비해 맥압이 두 배 이상 높은 경우가 많다. 맥압 상승은 혈관의 경직을 나타낸 것으로 고혈압의 발병위험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혈압은 최근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의 29.4%(남자 32.3%, 여자 26.7%)가 가지고 있을 만큼 흔한 만성질환이다. 70대 이상 노인은 절반 이상이 고혈압 환자다.
홍경순 춘천성심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흔히 두통, 귀울림, 현기증, 뒷골땅김 등을 고혈압의 증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혈압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합병증이 생기거나 직접 혈압을 측정해보지 않는 한 고혈압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 혈압 재기 30분 내 흡연ㆍ카페인 섭취 말아야
= 고혈압의 진단은 정확한 혈압의 측정에서 시작된다. 혈압계는 수은주 혈압계와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는 전자식 혈압계가 있으며 수은주 혈압계가 가장 정확하다. 전자식 혈압계도 상당히 정확하지만 주기적으로 수은주 혈압계와 비교해 조율해야 한다. 최근 유행하는 엄지손가락이나 팔목에서 측정하는 전자식 혈압계는 측정에 따른 편차가 커서 일반적으로는 추천하지 않는다.
오병희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진료부원장)는 "혈압을 잴 때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편안히 앉은 자세에서 적어도 5분간의 휴식 후 팔을 심장 높이 정도의 탁자에 올려놓은 상태로 측정해야 하며 적어도 측정 30분 전에는 흡연이나 카페인 섭취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상 혈압과 고혈압을 나누는 이상적인 기준은 없지만 치료를 통해 합병증을 줄일 수 있는 수준의 혈압을 임의적으로 정한 것이다.
만 18세 이상의 성인에서 일주일 이상의 간격을 두고 편안한 상태에서 2회 이상 측정한 수축기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혹은 확장기 혈압이 90㎜Hg 이상인 경우를 고혈압으로 판정한다.
따라서 한 번 혈압이 올라갔다고 고혈압으로 진단하지 않으며 이 경우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측정해 혈압이 지속적으로 상승돼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 고혈압 약 평생 복용해도 큰 부작용 없어
= 고혈압은 완치되기보다는 조절해야 하는 질환으로 많은 수의 환자가 평생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최근 부작용이 적은 혈압약이 많이 개발돼 혈압약을 평생 복용한다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약을 복용해 혈압을 조절하면 심혈관 합병증이 예방되므로 약 복용을 중단해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합병증이 발병하는 고혈압 환자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 교수는 지적했다.
약물 복용으로 혈압이 1년 이상 정상적인 범위에서 조절되면 약 용량을 차차 줄여나갈 수 있으며 철저한 생활요법과 같이 본인의 노력에 따라 약을 끊을 수도 있다.
[이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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