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안 닦는 당신, 치아인들 성할까
‘입 안의 혀’. 주인의 마음을 읽고 헌신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우리 몸에 혀만큼 유연한 기관이 있을까. 때론 맛을 보고, 때론 음식을 골고루 치아에 밀어넣고, 때론 사랑의 전령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혀는 그다지 ‘주인’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하다못해 이를 닦을 때도 소외당하는 경우가 많다. 충직한 혀라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으면 말썽을 일으킨다. 냄새는 물론 전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혀는 세균의 온상=지금 한번 거울 앞에서 혀를 내밀어 보라. 혀의 표면이 설태로 하얗게 ‘포장’돼 있다면 당신은 구강건강에 무심한 사람이다. 혀의 표면엔 많은 주름이 있다. 세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입 안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상피세포와 백혈구, 혈액의 대사산물, 음식물 찌꺼기가 주름 사이에 침착돼 있는 것이 바로 설태다.
혀에는 적게는 10만 개에서 많게는 100만 개 정도의 세균이 산다. 종류로는 500여 종. 대부분 질병과는 무관하지만 고약한 세균도 있다. 연쇄상구균의 일종인 스트렙토코쿠스 살리바리우스 외에도 풍치를 유발하는 포르피로모나스 긴기발리스, 충치 유발균인 스트렙토코쿠스 뮤탄스 등이 포함돼 있다. 일단 충치와 잇몸병이 생기면 전신질환으로 이어진다. 잇몸의 염증이 심혈관질환이나 당뇨병의 악화요인이 되고, 다시 이들 질환이 치주질환에 악영향을 주는 등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다. 혀를 닦으라는 얘기는 손을 씻으라는 얘기만큼 건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혀를 닦지 않으면=사람은 좋은데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럽다면? 바로 입냄새가 나는 사람이다. 입 냄새의 주범은 주로 휘발성 황화합물(VSC)이다. 단백질이 구강 내 세균에 의해 부패해 발생한다. 세균은 음식물 찌꺼기와 침, 그리고 떨어져 나온 구강점막 상피세포 등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세균이 입냄새를 발생시키는 곳은 주로 혀와 잇몸 부위다. 칫솔질만으로는 구강 내 유황혼합물의 25%를 없앨 수 있지만 혀닦기를 하면 75%까지 없앨 수 있다.
설태에는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4인방이 있다. 긴기발리스, 포르시덴시스, 인터미디아, 렉터스 등이다. 최근 ‘치주병학 저널’에는 이들 세균이 상주하는 여성의 잇몸뼈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뼈 소실이 많다는 버펄로대학 논문을 게재했다. 대상자가 폐경이 지난 여성인 만큼 갱년기 이후 혀 관리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설태를 방치하면 지속적으로 증가한 세균의 대사 산물이 입 안에 만성적인 자극을 주고, 구강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설태는 맛을 느끼는 감도를 떨어뜨린다. 음식물 찌꺼기가 미뢰의 감도를 떨어뜨린다는 것.
◇혀 관리는 이렇게=혀를 닦지 않으면 혀 표면엔 두터운 세균막이 형성된다. 이때 혀를 닦으면 세균의 비율은 29%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혀닦기는 그다지 모범적이 아니다. 서울대 치대 김태일 교수팀은 495명의 내원환자를 대상으로 칫솔모를 이용해 혀를 닦는 사람을 조사했다. 비율은 고작 53% 수준. 그나마 제대로 혀를 닦는 사람은 19%에 불과했다.
혀 건강을 점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혀를 윗니로 가볍게 문질러 백태의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약간 거칠거칠한 감촉이 느껴지면 정상. 백태의 색이 짙고 층이 두텁다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증거다.
혀 건강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수분 섭취. 특히 음주와 흡연은 혀 건강을 해치는 가장 나쁜 습관이다. 과음한 다음 날 혀에 궤양이 생기거나 까칠해지는 것이 좋은 실례다. 술·담배는 바이러스와 함께 혀암의 3대 원인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