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 놔둬 암까지간 J아줌마의 사연
대부분의 치질은 상태가 심해져도 생명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냄새나 불쾌감 때문에 쾌적한 삶을 방해 받을 수는 있지만 약물이나 수술로서 치료하면 금세 호전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치질의 한 종류인 치루는 예외다. 항문샘이 곪아서 생기는 치루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만성적인 염증에 의해 매우 드물게 암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일단 암이 발병하면 대부분 악성으로 판명되고 1년 안에 사망하기 쉽다. 따라서 치루는 치질 중에서도 가장 서둘러 치료해야 하는 병이다. 또한 반드시 수술을 통해 병의 뿌리를 뽑아주는 것이 좋다.
치루암 하면 50대 초반 주부인 J씨의 일이 생각난다. 그녀는 항문 주변이 딱딱하고 종기가 생겨 아프다는 이유로 내원한 환자였다. 집 근처 병원에서 종기를 째고 항생제 주사를 맞았는데도 통증이 낫질 않아서 필자를 찾아왔다고 했다.
J씨는 자신이 만성 변비가 있어서 항문이 깨끗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나 검사를 해보니 그녀의 정확한 병명은 만성 치루였다. 단순히 변비라고 생각하고 병원을 찾지 않은 탓에 치루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재발이 흔한 만성 치루를 단순한 종기처럼 치료했으니 나을 리가 없었다.
다행히 한 곳의 항문샘만 곪은 상태라 수술은 비교적 쉽게 끝났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항문 주변 근육이 경직돼 있고 절제한 치루 조직이 유난히 딱딱하고 점액질이 많은 것이 암이 의심됐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차근히 상황을 설명한 뒤 정밀검사를 권했다. 마음 속으로 아니기를 바랐지만 불길한 예상은 들어맞는 법. 절제한 치루의 조직 검사 결과 치루암으로 판명됐다.
조직검사 결과표를 받아 든 순간 오랫동안 의사로서 일해 온 필자도 가슴이 먹먹했다. J씨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 주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치루암이라뇨? 그런 암도 있나요? 수술했으니 다 치료된 것 아닌가요? 선생님, 제 아이들은 어쩌죠? 무슨 방법이 없나요? 어떤 치료라도 받겠습니다.”
J씨는 펑펑 울며 가슴을 쳤다. 마음이 아파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의사가 같이 아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J씨에게 항문과 직장을 완전히 도려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수술 받을 것을 설득했다. 인공항문까지 만들어야 하는 대수술인데다가 수술 후에도 암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J씨는 용기를 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8개월 동안 시행된 항암 치료도 씩씩하게 버텨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꼬박꼬박 정기 검진을 받으며 생존해 있다.
치루가 무조건 치루암이 되진 않는다. 신체적으로 암이 발병할 만한 여지가 있을 때 치루를 앓고 있어서 항문샘 부위에 암이 생겼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치루를 조기에 치료하면 치루암이 생기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병은 항상 우리 몸의 가장 취약한 부위부터 찾아오므로 아무리 사소한 병이라도 빨리 치료하는 것이 큰 병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라 하겠다.
조선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