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자들, 민간요법 매달리다 '큰 코'
최근 여의도성모병원 외과 전해명 교수팀은 위암 치료 중인 환자 195명을 대상으로 건강보조식품이나 보완대체의학의 이용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의 41%가 의사와 상의 없이 보완대체의학을 이용했으며, 이용한 방법은 상황버섯, 인진쑥, 가시오가피 같은 건강보조식품(52%), 녹용이나 인삼(26%), 그밖의 한방 탕약(10.8%) 등의 순으로 많았다.
특히 고학력자일수록 건강보조식품이나 민간요법을 더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뇨기종양학회의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 학회가 방광이나 전립선 등 비뇨기계 암환자 7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가 민간요법을 써 본 적이 있으며, 민간요법의 평균 치료기간도 39.6개월이었다. 역시 대학원 졸업자가 가장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버섯, 인진쑥, 가시오가피, 헛개나무, 뱀, 지네, 고양이, 잉어즙, 태반, 소변, 이름 모를 나무껍질과 정체불명의 중국약, 그리고 각종 건강보조식품들…. 상식적으로 병원과 약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온갖 식품들이 만성질환이나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겐 명약이나 비방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의사들은, 그러나 병원 치료를 마다하고 이런 ‘명약’과 ‘비방’에 매달리다가 시간과 돈 낭비는 물론, 목숨이 위태로운 응급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지난달 27일 신촌세브란스 병원 응급실에 간암 환자 차모(56)씨가 실려왔다. 한 달 정도 홍삼을 달여 먹었더니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복수가 차올랐기 때문이다. 차씨는 2003년 7월에 간암 수술을 받았으나 2004년에 재발, 색전술 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상태였다. 이날 차씨는 간 수치(GPT)가 4000을 넘나드는 응급상황이었다.
주치의인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심한 황달 증세를 보이고 있어 지금으로선 장담하기 힘든 상태”라고 했다.
간암 환자들은 간 기능이 극도로 약해진 상태인데, 온갖 건강식품, 약재를 함부로 먹다가 해독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치명적인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한 교수의 설명이다.
간염 등 간질환, 당뇨, 만성신부전처럼 치료가 쉽지 않고 평생을 두고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나 말기암 같은 난치병을 앓다 보면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어지는 것이 환자의 심정이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병동 박재화 수간호사는 “대개 병원 치료가 6개월을 넘어가는 시점부터 환자들이 동요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며 “특히 주위 사람들이 이것저것 좋다고 검증되지도 않은 것들을 권하면 환자들은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된다”고 했다.
당뇨병은 발병 5∼10년이 고비다. 삼성서울병원 당뇨 클리닉 심강희 간호사는 “약을 먹으며 혈당조절을 하다 보면 별 증상도 없고, 혹시 다른 방법을 쓰면 완치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민간요법을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심 간호사는 “그러나 당뇨 진단 후 10년 정도 지나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동안 충실히 혈당관리를 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지적했다.
류머티즘이나 퇴행성 관절염은 병원을 찾기도 전에 민간요법부터 찾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대한류머티스연구회가 지난해 류머티즘 환자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의 88%가 병원을 찾기 전에 1가지 이상의 대체 요법을 시도했으며, 이 중 7%는 500만원 이상의 비용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유빈 교수는 “류마티스 관절염은 발병 후 2년이 지나면 관절 연골이 파괴되는 등 관절 변형이 진행되므로 치료 시기가 늦어지면 이미 변형된 관절을 온전히 회복시키기 어려우니 반드시 병원에서 먼저 진단을 받을 것”을 당부했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고광철 교수는 “어떤 식품이 한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며 “만약 그렇게 효과가 좋은 식품이 있다면 진작 약으로 개발됐지 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생하고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고 교수는 “민간요법의 폐해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혹은 약으로 개발할 수 있는 유효 성분은 없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구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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