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릿병 ‘스스로 진단’ 은 금물
“선생님. 허리 아파 죽겠습니다. 당장 수술 시켜주세요.” “저는 죽어도 칼 대는 수술은 안할 겁니다. 무조건 약이나 주사로 고쳐주세요.”
척추전문병원을 찾는 환자들 중 의사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며 증상에 맞지 않는 치료법을 고집하는 환자들이 많다.
증상이 가벼워 수술 없이도 치료가 가능한 디스크 환자가 “수술을 당장 해달라”고 하는 경우나, 반대로 마비 직전의 척추관협착증 환자가 주변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와서 “허리 잘못 건드리면 앉은뱅이 된다면서요”하면서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노인척추전문병원인 제일정형외과병원 신규철 박사팀이 허릿병으로 내원한 환자 3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술을 망설여 온 이유 중 ‘허리 잘못 건드리면 큰일난다는 생각 때문에’라고 응답한 경우가 51%(190명)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19%(71명), ‘수술 비용에 대한 부담’ 14%(52명), ‘전신마취에서 못 깨어날까봐’ 9%(33명), ‘입원 및 회복기간이 부담돼서’가 7%(26명)라고 답변했다.
일반적으로 허리디스크의 경우 대부분 수술 없이도 치료가 가능하지만, 척추뼈가 두꺼워져 척추관이 좁아지고,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는 ‘척추관협착증’의 경우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막연한 편견과 두려움 때문에 검사받기를 꺼리고, 병명조차 모르고 지내다가 마비증상이 나타나고서야 다급하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척추관협착증 환자들은 적게는 2~3년, 많게는 10년 이상 다리저림·엉치통증 등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민간요법이나 물리치료 등에 의존하거나 참고 지내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
발병 초기에는 가볍게 저리고 당기던 것이 나중에는 다리가 터질 듯 아파 몇 m도 못 걷고 쪼그려 앉아 쉬었다가 가거나, 허리를 구부려야 통증이 덜해져 몸이 점점 앞으로 굽으면서 ‘꼬부랑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증상을 방치하다가 다리마비나 대소변 장애가 나타나는 등 심하게 악화된 상태에서야 병원을 찾아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제법 많다.
과거의 협착증 치료는 전신마취를 통해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전신마취 후유증이나, 수술 후 긴 회복기간으로 인해 신체기능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체력적인 부담이 커져, 병원에서조차 고령자의 척추수술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부위마취로 한시간 이내에 끝내는 수술법이 보급돼 70~80세 고령자도 수술을 받는 데 문제가 없다.
제일정형외과병원 문수현 박사는 “과거에는 10㎝ 이상 피부를 째고, 인공 뼈나 자기 뼈를 이식해 나사로 척추를 고정하는 수술을 많이 했다. 수술 시간도 길고 전신마취를 해야 했기 때문에 노인에게 적용하기에 위험부담이 높았다. 특히 골다공증이 심한 환자에게는 수술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최근에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자도 간단하게 수술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 안심하고 수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노인에게 적용되는 맞춤형 수술은 모든 과정을 간소화했다. 1.5~2㎝만 째고 부위마취를 해 45분 정도에 끝내는 간단한 수술이다. 이 수술은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는 뼈 가시를 살짝 긁어내는 것이다. 특히 3~5배율의 현미경으로 환부를 보면서 수술하기 때문에 정밀도가 높아졌다. 현미경을 보면서 신경을 풀어준다고 해서 ‘미세 현미경 감압술’로 불린다.
문박사는 “신경이나 주변 근육의 손상도 적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고령의 골다공증 환자에게도 시술이 가능하다”며 “90세 노인들도 수술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주위 사람들의 얘기나 섣부른 판단, 잘못된 자가진단으로 병원을 찾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증상이 점점 악화될 수 있다.
마비가 오거나, 대소변 장애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체력이 떨어져 신체 모든 기능이 약화되면서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으므로, 증상이 나타날 경우 병원을 찾아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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